◆ 평화의 기도 기도문 전문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평화의 기도 기도문 낭송
◆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교황에게 언제나 영감을 불어넣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5년 전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태양의 찬가’로 알려진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찬가’에서 영감을 받아 피조물을 위해 하느님께 올린 찬미가였다. 이번에는 ‘형제애 (그리고 사회적 우애)’이다. ‘형제애’는 오는 10월 3일 성인의 도시인 아시시에서 인준 예정인 새 교황 문헌의 주제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들’이란 누구인가? 이에 대해 내밀하게 밝히는 성인의 대답을 그의 유언의 시작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유언에서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끄심으로 그가 역겨워 했던 나병환자들과의 만남 이후의 마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지만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거룩한 복음의 형태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형제들은 하느님의 선물과 같다. 사실대로 말하면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이었으며, 고통 없는 선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인이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도록 이끌었으며,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형제들은 우리의 ‘전리품’이 아니며, 우리가 원하고 상상했던 모습도 아닐 수 있다. 형제들은 창조주의 살아있는 작품이며, 그분의 자유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선물이다. 형제들은 주어지는 이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택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오직 형제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뿐이다. 그들의 약함과 다양성까지도 말이다. 그 차이(혹은 가끔은 불협화음)는 결국 주님만이 조화롭게 하실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던 것처럼 “조화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평화의 기도, 가톨릭대사전 :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3805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체험, 바티칸 뉴스 :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0-09/papa-enciclica-fraternita-francesco-assisi.html